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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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잘 나가던 개발자가 신사업 기획자가 된 이유, <대기업 기획자의 고백> 김세호 저자

개인이든 기업이든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기획’이라는 첫 단계가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사업이나 제품 서비스 등을 늘 마련해야 하는 기업에게, 기획은 해당 사업/제품의 성공 여부를 비롯해 향후 기업의 존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기업의 기획부서 또는 기획자는 대개 조직 내 중심에서 사업의 전반을 진두지휘한다.

물론 다른 직무/업무 담당자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특히 ‘기획자’는 자질과 능력, 마음가짐나 의지 등이 탁월해야 한다. 과연 그런 탁월한 조건을 갖춘 기획자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또한 자신과 동료, 외부로부터 인정받는 능력 있는 기획자는 어떤 사람일까?

모두가 알 만한 대기업의 신상품 기획자로 활약한 경험과 처세를 솔직, 진솔하면서도 실무적인 내용으로 담아낸 서적 <대기업 기획자의 고백>의 저자 김세호 씨를 만나, 기획과 기획자에 대한 대답과 조언을 들었다.

<대기업 기획자의 고백/김세호 지음/OHK>
<대기업 기획자의 고백/김세호 지음/OHK>

그는 현재 국내 한 대기업에서 신사업 기획을 맡고 있고, 그간 현저한 기획 결과를 창출해 대내외로 우수한 기획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기획 또는 기획자와는 거리가 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정통 개발자로 중소기업에 입사해 개발 업무를 시작했다.

개발자 출신 기획자로서 책을 통해 ‘고백’하게 된 계기, 이유는 무엇인가?

기획 업무로 전향하려다 보니 그 관련 책이나 자료 등을 수 없이 찾아보고 참고해야 했다. 유용한 내용도 적지 않았지만, 대개는 문서(기획안/기획서) 작성이나 자료 정리 등에 관한 것이라, 실무적인, 실질적인 정보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획의 가장 밑 단계에서 현재까지 올라서기까지 겪었던 실무 경험과 정보, 노하우를 나같은 이들에게 공유, 전달해 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실제로 현업에서 동작하는 기획의 전 단계와 절차, 현상 등을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첫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는 후속 책에서 이어갈 계획이다. 올해 말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첫 책의 기획 영역과는 다른 영역의 기획을 다룬다.

컴퓨터공학 전공자로 개발자에서 기획자로 바뀐, 혹은 바뀌어야 했던 과정이나 배경이 궁금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초임 개발자로서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대기업으로 이동해서도 한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았다. 이후 상품기획 부서로 이동해서 3년 정도 근무했다.

당초에는 학계로 진출해 교단에 서려 했다.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교수직을 염두에 뒀지만, 실무 경험도 갖춰야 겠다는 생각에 일단 한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됐다. 이후 대기업까지 거치며 얻은 크고 작은 실무 경험을 토대로 다시 학계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개발 밖에 모르던 공학도가 사업/제품 기획자가 됐다
개발 밖에 모르던 공학도가 사업/제품 기획자가 됐다

그 시점에 한 선배가 뜬금없이 ‘기획’ 업무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학교든 회사든 어디든 기획이란 절차가 대단히 중요하고, 개발자의 시선과 안목에서 벗어나 폭넓은 영역을 아우를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경우, 특정 개발 분야 즉 애플리케이션 개발이나 하드웨어 개발이라면 그 개발 분야 업무만 처리하면 되는데, 기획은 스마트폰의 외형과 내형, 구조/구성, 디자인, 생산이나 제조 관련, 시장/소비자 조사, 판매전략/마케팅, 가격 책정, 사후지원 등 모든 분야를 다루고 고려해야 한다. 그만큼 공부할 것도, 배울 것도, 경험할 것도 많은 분야가 기획이다.

개발자였지만 이런 기획 업무는 확실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오랜 고민 끝에 기획자로의 전환을 결심하고, 당시 기획팀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 팀 합류 의사를 전했다. 이후 기획1팀에 배정돼 기획자로서 첫 발을 뗐다.

그렇다 해도 의지나 의욕 만으로 막연히 도전할 분야도 아닐 텐데, 어떻게 적응하려 노력했나?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임을 공감했다. 그 의지와 의욕으로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우선 개발자로서의 능력과 그간 성과, 영광은 내려 놓고, 기획팀과 팀원들의 성향과 방식, 분위기 등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개발팀이든 기획팀이든 결국 사람과 사람이 모여 협업하는 건 동일하니, 그들을 인정, 이해하고 동화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일반적으로, 업무나 부서, 조직, 환경 등이 바뀌면 대부분 심한 불안감과 거부감 또는 회의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 반응이 당연하겠지만, 자신에겐 ‘내려놓음’과 타인에겐 ‘받아들임’을 인정하면 (물론 쉽진 않겠지만) 큰 동요 없이 적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책에서도 언급했는데, 어떤 환경이라도 ‘바닥부터 치고’ -> ‘작은 성취를 경험하고’ -> ‘이를 경험으로 쌓아’ -> ‘패턴으로 학습’하는 과정을 반복하길 권한다. 바닥을 치면 기적이 일어난다(아니,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시작이 어떻든 기획자로서 인정받을 성과를 얻으려면, 기획자만의 특별한 자질이나 능력이 있어야 될 듯하다. 시작은 개발자였지만 ‘잠재적인 기획 능력’을 갖고 있던 건 아닐까?

되돌아보면 솔직히 특별한 기획 능력이랄 건 없던 것 같다. 다만 의지는 분명했다. 자리에만 앉아 있는 기획 업무가 아닌, 현장을 돌며 사람을 만나 정보/지식을 얻어 기획하려 움직였다. 주구장창 한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개발만 하던 습성이라 가장 먼저 이를 바꾸려 노력했다.

명확한 입력을 넣으면 명확한 결과를 얻었던 개발 업무와는 달리, 기획 업무는 예측, 예상할 수 없는 불명확한 기대와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터라, 그 동안 굳어진 개발자 습성을 버리는 게 급선무였다. 지금은 예전처럼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서는 개발업이든 기획업이든 만족스럽게 처리할 순 없을 것 같다.

기획자로서 첫 기획 업무는 무엇이었고, 어떤 결과를 얻었나?

스마트폰 화면 모서리/가장자리를 둥글게 처리하는 기획이 첫 기획작이었다. 다만 이 기획은 공동 업무라 기획 보조 역할이었고, 이후 단독 기획으로 진행했던 건은 웨어러블 제품, 스마트워치였다.

회사 내 또는 시장 내 첫 스마트워치였던 만큼, 본사 및 관련 계열사들의 기술, 기능이 망라된 기념비적인 제품이었다. 이 기획을 진행하며 여러 관계사, 담당자와 수많은 미팅과 논의, 조율을 해야 했고, 이를 통해 다양한 기획 경험과 스킬을 쌓을 수 있었다. 이때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깨우쳤다.

해당 스마트워치는 이후 정식 제품으로 출시됐는데, 아쉽게도 판매량이 그리 높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여러 시행착오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생의 첫 기획품으로 탄생한 그 스마트워치를 처음 손목에 차던 가슴벅참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다.

중소기업 개발자와 대기업 기획자로서 눈에 띄는 개발 및 기획 성과를 거뒀다. 기업 규모 외에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경험했나?

당연히 대기업인 만큼 일하는 방식과 절차는 중소기업과 많이 다르다.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인력이 부족하니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병행 담당할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런 경험이 무익한 건 아니지만, 자신의 전문/전공 업무에서 최고의 성과를 끌어내는데 걸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멀티 플레이어’ 스타일의 중소기업 업무 경험이, 철저한 분업 방식의 대기업에서도 제법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특히 기획 프로세스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대기업이 아무래도 폭넓은 업무 분야에서 많은 전문가/관계자와 협업하기에 좀더 유리한 여건이지만, 요즘 같은 때라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자신의 역량을 좀더 키우고 다듬어서 이후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기획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을 텐데, 그 모든 ‘기획’의 기조나 철학은 무엇이라 여기나?

무엇보다 ‘실행’이다. 흔히들 얘기하는 대로,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획 업무를 비롯해 대부분의 업무 영역에 적용될 말이다. 책상에서 모니터로 보는 데이터나 자료만으로는 (제 아무리 우수한 조사기관이 만든 결과라도) 시장과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해당 분야의 내외부 전문가나 관계자를 직접 만나,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게 기획 업무의 기본이라 여긴다. 그러려면 기획의 성공 여부에 대한 고민, 걱정, 우려, 불안은 접어두고, 바로 실행하고 움직여야 한다. 좋은 기획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나옴을 몸소 체험했다.

공학계열 전공자가 사업/제품 기획자로 활동해 보니, 아무래도 기획 업무에 좀더 유리할 전공/학과가 있을 듯하다.

‘경영/마케팅’ 분야가 아무래도 기획업에 근접하다. 사업/제품 기획에 기틀이 되는 소비자 성향이나 구매 패턴 등을 학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획은 소비자/사용자들이 원하는, 그들에게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단계라 경영이나 마케팅 전공자라면 좀더 유리할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다른 전공자가 그만큼 불리하거나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 사례만 봐도, 경영/마케팅은 애당초 관심 없던, 개발 밖에 모르는 공학도가 지금은 대기업의 기획팀에서 신사업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실행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기성세대든 Z세대든 남자든 여자든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이러한 기획 기조나 원칙에 대해 후배 기획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여러 후배들도 각자 나름의 의견과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지만, ‘답은 현장에 있다’는 조언에는 모두들 동의하고 주도적으로 실행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선배의 ‘지시’에 따라 마지못해 반응하기도 했는데, 하나씩 조금씩 나타나는 성과를 인정하고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후배들도 이후 자신의 후배들에게 그 기조를 그대로 전달하리라 예상한다.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동일하게 적용될 가치라 여긴다. 책에서 조언하고 권장한 기획 노하우는 모르긴 몰라도 이전 10년 전이나 이후 10년 후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는 ‘좋은 선배, 사수, 상사’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이는 후배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하다. 후배에게 좋은 선배, 사수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요즘에는 부서 이동 시 부서나 부서원 구성을 참고해 선택하면 이를 반영하는 인사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즉 후배도 선배들의 개인적/업무적 성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역시 ‘좋은 선배/사수’는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가 비록 성격/성향이 다소 까다롭고 냉소적이라도, 전문성 그 하나를 인정할 만하면 좋은 선배고 좋은 사수다. ‘좋은 선배’와 일하면 개인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좋은 사람’과 일하면 그저 일하기가 편할 뿐이다. (물론 전문성도 풍부하고 성격까지 좋은 선배라면, 그와 같은 후배가 되길 노력하면 된다.)

지금 어디선가, 미래의 ‘잘 나가는 기획자’를 꿈꾸며 기획자의 길을 준비하려는 후배(또는 선배)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책에서도 반복으로 강조했지만, 기획은 팀 또는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다. 그런 만큼 기획에 관한 의지와 각오가 절대 필요하다. 배우고 경험하고 습득하는 과정을 꺼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관련 주변인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훈련을 하길 권한다. 이는 나중에 자신에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사소한 일이든 전체 윤곽/그림을 그리고, 실천/실행하는 습관도 길러야 한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기획이라도 적극적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

자, 사막 한 가운데 인공 오아시스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맡는다면, 어떤 기획을 세울지 면밀히 고민해 보라.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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