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월류원 “충북 영동 캠벨로 만든 우리나라 와인을 세계로” | K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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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차주경 기자]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연다. 옅은 포도향이 공기와 만나 이내 가지각색 다른 느낌을 품은 오묘한 향으로 변한다.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 이 향이 코와 혀를 함께 간지럽힌다. 이어 과실의 풍만한 단 맛이 오크 통의 쓴 맛과 어우러져 입 안에서 한 바탕 축제를 벌인다. 이 즐거움이 우리가 와인을 사랑하는 이유다.
와인은 저마다 다른 맛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반드시 비싼 와인이어야만, 해외에서 만든 와인이어야만 이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국산 포도로 만든, 맛과 향이 뛰어난 와인이 있다. 와이너리 ‘월류원’을 이끄는 박천명 대표의 목표가 바로 국산 와인의 품질을 우리나라, 나아가 세계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지금은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를 운영 중이지만, 저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와인도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만드신 수제 와인을 한 모금 맛 본 순간,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10년 전 마신 그 와인의 맛이 지금도 혀 끝에 선해요. 포트 와인처럼 은은한 산미와 잔감을 가진 그 와인을 마시고 마치 천국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어요. 나도 이런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천국을 느끼게 해주자고요.
바로 충북 영동의 와인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3년 동안 와이너리 운영과 와인 조제, 맛을 즐기고 알리는 소믈리에 교육을 받았어요. 그리고 와이너리 월류원을 세웠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들었어요. 포도를 확보하는 것, 와인을 만드는 것, 와이너리를 세우고 운영하는 것 모두 처음이었으니까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 상표 개발과 사업 초기 설정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어요. 라벨 디자인과 시제품 제작에 이어 판로까지 열어주고, 마치 자기 식구를 챙기듯 마케팅과 홍보도 지원해 준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올해 9월에 열리는 주류 행사 ‘바 앤 스피릿’, 10월에 열리는 ‘충북 영동 와인 축제’도 함께 준비 중입니다. 와인에 대한 제 신념과 연구 정신을 인정 받은 듯 해서 늘 행복합니다.”
천국에 들어선 듯한 맛을 전하려고 박천명 대표가 세운 와이너리 월류원. 주요 와인의 이름은 ‘달의 물방울’이라는 의미의 ‘오드린(EAU DE LUNE)’이다.
“충북 영동에서 3대째 포도를 재배 중인 농가와 함께 오드린 와인을 만듭니다. 오드린의 와인 양조 철학은 명확해요. 첫 번째,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믿음을 담습니다. 두 번째, 넘버 원(No.1)이 아니라 온리 원(Only One)을 추구합니다. 최고라고 자부하는 와인은 많아요. 월류원 오드린은 최고가 아니라 유일한 맛을 가진,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즐길 수 있는 와인이 될 것입니다.”
월류원의 와인의 종류는 두 가지다. 스위트 와인 ‘베베마루’와 드라이 와인 ‘그랑티그레’다. 베베마루는 단 맛이 강해 누구나 쉽게 마시고 즐긴다. 충북 영동이 낳은, 품질 좋은 캠벨 포도로 만드는 덕분이다. 박천명 대표는 베베마루를 보급해 와인의 대중화를 이끌면서 ‘우리나라 캠벨 포도로 만든 와인은 맛이 없다’는 편견도 없애려 한다.
“와인 업계가 우리나라의 캠벨 포도의 맛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가슴 아팠어요. 콩코드 포도로 만든 와인은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인기를 모았는데요, 캠벨 포도는 콩코드 포도의 자손입니다. 오히려 교합한 포도라 장점이 더 많아요. 그렇지만, 캠벨 포도로 만든 와인은 이름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심지어 ‘캠벨 포도로 만든 와인은 금방 식초처럼 맛이 시어진다’는 낭설까지 퍼졌어요. 캠밸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마셔 보면 단번에 아는 문제인데도 말이에요. 충북 영동의 농부들이 1967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길러 온 캠벨 포도에 덧씌워진 오해를 풀고, 맛과 향을 인정 받도록 노력할 거에요.”
베베마루의 뜻은 ‘아기(베베)의 순수한 마음으로 와인을 만들어 최고(마루, 꼭대기)에 선다’는 것이다. 와인에 미친 남자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박천명 대표의 마음이 녹아들어간 이 와인을 마신 소비자들은 ‘나와 아내를 설레게 한다’, ‘첫 키스의 느낌이다’, ‘사랑을 부르는 듯하다’ 등 낭만 넘치는 평가를 내린다.
“사실, 베베마루는 저와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서 제가 행복하게 살도록 돕고 있는 제 아내에게 헌정하는 와인이기도 해요. 술을 못 마시는 아내가 쉽게 마시면서 달콤한 맛과 깊은 향을 느끼도록,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며 과일 특유의 맛과 향을 진하게 내도록 만들었습니다.
‘설레임’과 ‘아내를 위한’, ‘내를 위한’ 세 종류인데, 모두 충북 영동의 포도로 만들었어요. 내를 위한에는 특별히 충북 영동의 또 하나의 특산물인 감을 넣었습니다. 지역에서 나는 맛있는 과일을 활용해서 ‘리슬링 와인’처럼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유명한 와인을 만들려 합니다.”
박천명 대표가 꼼꼼하게 신경 써 만들었다는 와인 베베마루 시리즈 가운데 ‘설레임’을 한 모금 마셨다. 포도의 붉고 푸른 빛깔과 어울리는 농후한 향, 깊은 단 맛과 약간의 새콤한 맛이 깊은 인상을 준다. 떫은 맛은 거의 없었다. ‘아내를 위한’은 도수가 10%로 낮아선지 맛과 향이 한결 부드러웠다. 와인에 감을 넣어 만들었다는 ‘내를 위한’은 빛깔부터 독특했다. 포도와 감의 각기 다른 단 맛이 잘 어우러진데다 향도 깊어, 다음 한 잔을 또 마시고 싶어졌다.
월류원 베베마루가 와인의 대중화를 이끌 제품이라면 그랑티그레는 명품화를 이끌 와인이다. 충북 영동 백화산 자락에 있는, 수천만 년 동안 쌓인 파쇄석에 자연스럽게 새겨진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에서 영감을 받은 와인이다. 월류원 그랑티그레 와인은 1974, 1988, 2002 세 종류다. 저마다 다른 의미와 특징을 가졌다.
“호랑이의 해인 1974년, 특별한 양조법으로 만든 와인이 그랑티그레 1974입니다. 세상에 단 한 병 뿐인, 특별한 시그니처 와인이에요. 오직 월류원에서만 이 와인을 맛 봅니다.
그랑티그레 1988은 우리나라 와인이 나갈 길, 방향을 제시하는 블렌딩 와인으로 기획했어요. 산미가 강해 한 모금 마시면 추억(Memories)을 되뇌이게 하는 m1988, 타닌 느낌을 늘려 건강(Health)을 신경 써 만든 h1988 두 종류에요.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한 오미자와 캠벨 포도를 블렌딩해 만들었기에, 한 모금 마시면 친구와 함께 즐기는 듯한 아련함을 전달합니다.
그랑티그레 2002는 우리나라 포도로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제 다짐을 녹여낸 와인입니다. ”
월류원의 와인은 우리나라의 각종 주류 시상을 흽쓸었다. 2017년~2019년, 2021년과 2022년 대한민국 주류대상의 ‘우리 술 한국와인’ 대상을 받았다. 박천명 대표는 충북 영동의 품질 좋은 캠벨 포도로 오드린 와인을 만든 능력을 인정 받아, 2021년 농림축산지식부 장관상에 해당하는 신지식농업인장 표창을 받았다.
“월류원이 있는 충북 영동은 와인을 만들기 좋은 천혜의 지역이에요. 특산물 캠벨 포도는 세계 어떤 포도와 견주어도 맛과 향이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포도를 알리려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어요.
월류봉, 호랑이 형상 등 지역 명소에서 동기를 받아 월류원 와인을 만들었어요. 지역을 알리고 싶어서 와이너리 투어도 기획했습니다. 월류원 인근의 명소를 한 바퀴 같이 돌고 와이너리로 돌아와 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투어입니다.
이렇게 지역과 와인을 함께 알리면서 우리나라 와인이 맛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 발전을 막는 여러 규제를 조금씩 바꿀 것입니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재배한 과일로 어렵사리 만든 과실주며 와인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도록 하고 싶어요.”
박천명 대표는 올해, 잠시 쉬며 지난 10년 동안의 여정을 돌아보고 성찰할 예정이다. 월류원을 기획할 때 세운 목표 ‘우리나라 와인의 패러다임 전환’을 어디까지 이뤘는지, 성과와 한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궁리한다.
“우리나라 포도와 와인이 홀대 받는 것이 안타까워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인식을 아직 바꾸지 못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능력 있는 와인 마케터와 협업해 이 인식을 바꿀 예정입니다.
물론, 와인 신제품도 기획 중이에요. 오드린 와인 9종에 신제품을 3종 추가, 총 12종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소비자는 한 달에 하나씩, 매달 다른 월류원 오드린 와인을 즐깁니다. 신제품은 포도의 귀족이라 불리는 샤인머스캣으로 만듭니다. 충북 영동에서 포도를 가장 잘 재배하는 ‘포도왕 농가’와 손 잡고, 25브릭스 이상의 당도를 가진 샤인머스캣만 공급 받아 와인을 만들 거에요.”
충북 영동의 캠벨 포도로 빚은 월류원의 와인을 마셔 보면, 자연스레 샤인머스캣 와인의 맛과 향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박천명 대표는 샤인머스캣 와인을 서둘러 선보일 계획이 없다. 이 와인이 자신이 세운 엄격한 맛과 향의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한다는 확신을 갖고 나서야 소비자에게 내놓을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와인을 세계에 알리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다운 행동이다.
“월류원의 와인은 소비자에 의해 만들어진,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는, 그리고 소비자를 통해 미래를 보는 와인입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제대로 만든 맛있는 명품 와인을 즐기도록, 나아가 우리나라 와인 업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 밝은 미래를 이루도록 앞장서겠습니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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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IT동아 (CC BY-NC-ND 2.0)